도쿠가와 요시치카(徳川 義親)
시이쿠 도시조(椎久 年蔵)와의 교우
유랏푸에 도쿠가와 농장을 소유한 오와리 도쿠가와(尾張 徳川)가는 아이누 사람들과도 깊은 교류를 맺었다. 메이지시대 도쿄에서 태어난 도쿠가와 요시치카(徳川 義親)는 도쿠가와 요시아키라(徳川 義礼)의 양자가 되어 오와리 도쿠가와가를 계승한 뒤 도쿠가와 농장주가 되어 농장을 경영한다. 다이쇼7(1918)년 이후 도쿠가와 요시치카는 매년 야쿠모를 방문하여 곰 사냥을 하였고 이것은 쇼와14(1939)년까지 이어졌다. 도쿠가와 요시치카는 유랏푸 아이누의 리더인 시이쿠 도시조와 곰 사냥을 하는 등 서로를 ‘도요’ ‘도쿠’라고 부르는 사이였다고 한다. 도쿠가와 요시치카는 시이쿠 도시조를 숙련된 수렵인으로 도시조는 요시치카를 뛰어난 농장주로 여기며 서로에게 경의를 표했다. 곰 사냥이 맺어준 인간 대 인간의 교류가 있었다고 생각된다.
개척 이주자 상륙 첫 걸음의 땅 비석
메이지시대의 이주자와 아이누와의 관계
메이지시대・다이쇼시대
분화만 측 유랏푸강
MAP No.12 [개척 이주자 상륙 첫 걸음의 땅 비석 해설 간판]
유랏푸로의 집단 이주
유랏푸 하천에는 유랏푸 코탄(취락)이 있는데, 이 곳에는 아키나이바(商場 : 아이누와 와진이 교역하는 장소)도 있었다. 에도시대에는 와진도 살기 시작했다. 메이지11(1878)년에는 오와리 도쿠가와가의 옛 가신이 배를 타고 유랏푸강 앞바다까지 와서 거룻배와 아이누 사람들에게 떠밀려 상륙한 후 내륙 쪽에 이주하였다.
스가에 마스미(菅江 真澄) 『마스미유람기(真澄遊覽記)』
국립국회도선관 디지털 컬렉션
오와리 도쿠가와가 제17대 당주인 도쿠가와 요시카츠(徳川 慶勝)는 메이지 유신 후에 무직이 된 옛 번의 무사들의 일자리를 마련해 주기 위하여 홋카이도 이주에 착수한 후 유랏푸에 ‘도쿠가와 개간시험장’을 개설하였다. 현재의 스미조메초(住初町) 부근부터 개간을 시작하였다. ‘야쿠모’라는 마을 이름은 도쿠가와 요시가츠가 스사노오노미코토(須佐之男命)가 읊은 고시 ‘겹겹이 구름 이는 이즈모 땅에 겹겹이 구름이 울타리를 만든다. 아내를 감출 겹겹이 울타리를 두르는 것처럼. 겹겹이 두른 구름 울타리를(八雲立つ 出雲八重垣 妻籠みに 八重垣作る その八重垣を)’에서 따온 것이다.
유랏푸 아이누와 이주자의 관계
메이지13(1880)년에 유랏푸강에서 홋카이도 처음으로 ‘연어 천연 부화 사업’이 시작되었지만 강의 대부분에서 연어 포획이 금지되며 예전부터 가지고 있던 아이누와 마을 사람들의 연어 포획권을 빼앗기게 된다. 그래서 관리와 위탁을 부탁 받은 도쿠가와가 이주 집단은 연어의 포획을 아이누와 마을 사람들에게 위임하고 전체 포획량의 절반을 나누어 가지는 것으로 조화를 도모하였다. 메이지18(1885)년에는 ‘연어 종육 조합’을 설립하여 아이누 사람들도 조합원이 되어 부화 사업에 참가하여 부화사업이 이어졌다. 다이쇼시대가 되면 도쿠가와 농장주인 도쿠가와 요시치카는 유랏푸의 아이누인 시이쿠 도시조와 오토시베 아이누인 벤카이 유조 등 곰 사격의 명수들과 함께 곰 사냥을 하거나 곰 보내는 의식에 참가하는 등 오랜 시간에 걸쳐 우호적인 관계를 구축하였다.
■개척 이주자 상륙 첫 걸음의 땅 비석
〒049-3104 홋카이도 후타미군 야쿠모초 우치우라초2
「JR 야쿠모역」에서 도보로 약22분, 자동차로 약6분